앎
앎은 각 개인 안에 있는 깊은 마음이다.
앎은 신과의 연결이다.
앎은 모든 지적 생명체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앎은 사로잡혀있는 마음에 평범한 상황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앎은 개인 안에 있는 신이다. 신은 우주에 있는 앎이다.
앎은 모든 관계의 총합이다.
앎은 다음 중 어느 것보다 깊지만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 직관
- 양심
- 창의성
"실제로는 당신이 앎이다."[1]
"앎이 실제로 본연의 당신이다."[2]
앎이란 무엇인가?
"앎은 신의 일부로서, 개인들 사이 큰 관계를 맺게 하고, 그 개인들이 속한 종족의 안녕에 공헌하는 활동을 하게 하면서,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한다. 이것을 넘어서면, 앎은 하림의 수준에서 하는 것처럼, 모든 종족의 안녕에 공헌한다."[3]
"앎은 당신의 참자아, 참마음을 의미하며, 우주에서의 당신의 참된 관계들을 의미한다. 앎에는 또한 당신이 세상에서 응답해야 할 큰 부름이 담겨 있고, 당신의 본성, 당신의 내재된 모든 능력과 기량, 심지어 당신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이롭도록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활용 방안이 담겨 있다."[4]
"앎은 사랑의 진짜 씨앗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사랑, 두려움 때문에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일종의 도취가 아닌 사랑의 진짜 씨앗을 지니고 있다. 앎은 참사랑의 씨앗이다. 정복하고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힘과 자유를 주고자 하는 사랑의 씨앗이다."[5]
앎과의 관계
"앎과 당신의 관계는 신과 당신의 관계를 의미한다."[6]
"신은 사람들이 이 부름에 응답할 수 있도록 개개인 안에 앎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이 앎은 각 개인 안에 있는 큰 지성으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지만, 모든 생명의 창조주와 항상 관계를 맺고 있다. 앎은 당신이 풍요롭게 살거나 남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앎은 이런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앎의 목적과 본질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가 생존하면서 이처럼 큰 문턱에 계속 다가갈 때, 그때 오는 큰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7]
"당신이 앎과 완전히 결합하고 앎과 동일시하는 체험을 할 수 있기 전까지는, 앎이 삶에서 동떨어진 힘처럼 보일 것이다. 즉, 큰 어려움과 불화의 시기, 그리고 당신이 진심으로 앎의 현존과 안내를 요청하는 특정 시기에만 일어나고 드러나는 힘처럼 보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앎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신은 아직 앎과 완전히 결합되지 않았기에, 관계를 맺고 있다. 관계는 완전한 결합에 이르는 예비 단계이다."[2]
깊은 마음
"당신 내면에는 큰 마음이 있다. 모든 생명의 창조주가 당신을 안내하고, 보호하고, 삶에서 큰 성취로 이끌기 위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큰 마음이 있다. 이 깊은 마음은 생각하는 마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족과 문화와 종교 등에서 오는 세상의 모든 영향에 반응하여 조건화되고 형성된 세상 마음인 이성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당신 내면에는 깊은 마음, 앎의 마음이 있다."[6]
"성령은 당신의 의지이다. 성령은 당신이 신과 공유하는 의지이다. 당신의 영적 가족과 공유하는 의지이다. 당신만이 이룰 수 있는 부분인 당신의 특별한 부분을 자리잡게 하면서, 당신을 복원시킬 계획이 이 성령과 함께 온다. 신이 당신에게 준 것이 당신의 의지이다. 왜냐하면 신이 당신에게 앎을 주었기 때문이다."[8]
이성과 앎
"앎의 마음은 다른 마음과 같지 않다. 당신은 앎에 관해 끝없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성은 또 다른 이성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은 앎이 어떤 것인지 추측해볼 수 있지만, 사실 당신의 추측은 여전히 당신의 이성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것이며, 이성은 단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 그 자신의 이미지들만 투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앎의 깊은 마음이 이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앎은 정의할 수 없다. 당신은 앎이 표현된 것을 묘사해볼 수 있으며, 당신이 앎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어떤 것을 묘사해볼 수 있지만, 앎은 정말 대단히 신비롭다."[9]
신이 당신에게 말하는 방법
"앎과 당신의 관계는 신과 당신의 관계를 의미한다. 신은 앎을 통해서 당신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것을 음성으로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느낌이나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소리나 음성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앎의 힘과 현존을 다르게 체험한다."[6]
앎을 찾는 방법
"앎의 학생이 되라. 앎길을 배우라.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으라. 앎이 당신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게 하라. 앎이 당신의 삶을 바로잡게 하라. 앎이 당신을 안내하고 인도하고 보호하게 하라. 앎이 당신 내면에 있는 큰 지성을 기르게 하라. 당신의 관계와 당신의 평가에서 앎이 당신을 이끌게 하라. 앎처럼 고요해지고, 앎처럼 꿰뚫어 보고, 앎처럼 통찰하고, 앎처럼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라. 당신의 진짜 동행자들을 만나라. 당신의 목적을 찾으라. 마음 놓고 기꺼이, 즐거이 다른 것들을 옆으로 제쳐 놓는 것으로, 세상에서 당신의 진짜 일이 드러나도록 허용하라."[10]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어 다시 앎으로 되돌아가라."[11]
"현실적인 문제들을 매우 근본적인 방식, 즉 "예, 아니오"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12]
앎에 대한 체험
"앎을 체험하는 능력, 삶의 큰 목적과 의미와 방향을 체험하는 능력은 지혜의 함양에 달려 있다."[13]
"당신이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앎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그저 듣고 싶은 말만 들리고, 정작 중요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다면, 말이나 느낌으로, 생각이나 꿈이나 통찰력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앎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당신 삶에서 이런 시기가 되면, 앎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다. 진심으로 묻고 답을 기다리라. 당신은 답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알고 싶은지, 또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지 알 것이다."[14]
"당신이 앎 자체를 체험하고 있을 때, 앎은 당신 생각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은 앎의 대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앎은 여전히 당신 생각을 모두 큰 목적에 봉사하도록 이끌 것이다."[15]
"앎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극보다는 조용히 있고자 하며, 의미 없는 대화보다는 다른 이들과 정직하게 결합하고자 한다. 또한 개인적 이득을 위해 다른 이를 그저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관계에서 결합을 체험하고자 하며, 생각보다는 통찰에 가치를 둔다. 당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연의 당신은 당신 마음이 아니며, 마음은 영을 위한, 즉 앎을 위한 훌륭한 소통의 도구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은 세상에 있기 위한 매개체로 본다. 이 매개체를 통해, 당신은 소통을 할 수 있고, 공헌을 할 수 있으며, 이곳 세상에 있는 다른 이들과 깊은 결합을 체험할 수 있다."[16]
"하루하루가 중요해지고, 모든 만남이 중요해지며, 심지어 당신 삶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의례적인 일들도 이제는 앎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삶과 열정이 회복되고, 세상에 큰 운명이 있다는 의식이 회복될 것이다."[17]
"이 긴 연습 시간은 당신 준비에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연습을 통해 역량이 커지고, 이해가 커지며, 체험이 많아지고, 세상에 있는 동안 앎을 체험하기가 훨씬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18]
"당신은 신을 체험하고 있지 않을 때 신을 믿는다. 또 앎을 체험하고 있지 않을 때 신을 믿는다. 왜냐하면 앎은 당신이 신을 체험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환상적인 환시나 고양된 체험, 감동적인 충만감을 가지려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제로 당신과 신의 관계는 아니다. 왜냐하면 관계는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가, 또 본질과 행동 양쪽에서 어떻게 결합되는가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동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신의 본질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는 이곳에서 관계를 제대로 맺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곳에서 관계는 본질에서 관계일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관계도 되어야 한다."[16]
"당신은 본질적으로 신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관계는 앎을 통해 연결되고, 앎을 통해 표현된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은 당신이 앎을 체험하고 있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앎을 믿고, 신을 믿고, 내면에 있는 더 큰 어떤 것을 믿는다. 하지만 믿음은 당신의 개인적 마음인 표면 마음에만 의미가 있다. 앎 자체에는 믿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앎에는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앎은 의심과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니다."[16]
"향후 백오십 년간 일어나는 사건들을 준비하고, 또 향후 천 년에서 삼천 년에 이르기까지 생겨나는 종교들을 준비함에 있어, 당신의 성장을 위해 큰 공동체 의례儀禮들이 공유될 것이다. 이 의례들은 철학적으로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연습들로 주어진다. 이 의례들은 단순히 이성적 추측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앎을 체험하고 영적 현존과 접촉을 체험하도록 하는 입문이다."[19]
"사람들은 그들의 상황을 매우 흡족하도록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앎을 체험할 기회를 주어 자신을 일깨우려고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만들려고도 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가?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서다."[20]
앎의 증거
"앎은 당신 관점의 총체적 전환과 당신 체험의 총체적 변화, 당신 주안점의 총체적 전환, 당신 가치체계의 총체적 변화를 나타낸다. 이것이 앎의 증거이다."[21]
아는 자유
"당신이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앎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그저 듣고 싶은 말만 들리고, 정작 중요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다면, 말이나 느낌으로, 생각이나 꿈이나 통찰력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앎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당신 삶에서 이런 시기가 되면, 앎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다. 진심으로 묻고 답을 기다리라. 당신은 답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알고 싶은지, 또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지 알 것이다."[14]
지금 시기에서의 앎
"신은 당신을 세상에 파견하여,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 시기에 세상에 있게 하였다. 하지만 앞에 놓인 어려운 시기를 위해, 당신을 준비시키고, 채비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려고,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것은 이성의 영역과 범주를 넘어, 앎이라고 하는 깊은 지성에 사는 어떤 것이다. 표면 마음에서는, 당신이 세상의 바람에 휩쓸리고, 혼란 상태에 있으며, 당신 삶에 참된 방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외부의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삶을 어떻게든 설명해보려고 해도, 당신 삶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정돈되지 않고, 와해되고, 통제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표면 마음 아래 깊은 곳에, 큰 지성이 있다. 이 지성은 당신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또 새로운 세상에 봉사하는 큰 삶을 살도록 당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22]
"위험한 시기지만, 당신에게는 이 세상에 있기에 딱 맞는 시기다. 왜냐하면 당신이 세상에 온 이유가 환상 속에 숨거나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본디 당신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가장하거나 삶을 회피하고 무책임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여기 온 이유는 세상에 봉사하러 왔으며, 삶에서 당장 필요한 것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큰 지성인 내면의 앎만이 이 일들을 알고 있으니, 앎만이 이 일들에서 당신을 안내해야 한다. 당신은 앎에 내주는 법을 배워야 하고, 당신 마음속에 있는 다른 음성이나 주변 세상에서 당신에게 미치는 모든 영향력에서 이 앎을 가려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23]
앎이 하는 일
"분리된 자는 앎을 통해 복원된다. 사악한 자는 앎을 통해 교정된다. 어리석은 자는 앎을 통해 현명해진다. 이것이 신이 복원하는 방법으로, 인간 가족뿐만 아니라, 분리 속에 사는 모든 창조물, 당신이 단지 상상만 할 수 있는 물질 우주에 속한 모든 창조물을 복원한다."[24]
"앎은 당신을 적절한 사람들에게 이끌 것이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25]
"앎은 세상이 나아가는 길을 알고 삶이 진화하는 방향을 안다. 왜냐하면 앎은 매우 근원적인 수준에서 삶에 응답하고, 꼭 필요한 것을 알며, 다른 어떤 것에도 속거나 조종당하지 않기 때문이다."[25]
"당신이 관계를 맺을 때 앎이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앎이 당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26]
"당신이 앎 없이 선택하면 앎은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잘하고 있으며, 그렇게 결정하기를 잘했다고 깊이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앎이 당신과 함께 가지 않으면, 당신이 하는 일에는 어떠한 안정이나 확실성이 없을 것이다."[26]
"앎은 선을 위해 모든 정신 능력과 신체 능력을 활성화시키며, 인류에게 이로운 온갖 개인적 활동들을 인도한다. 예술이나 과학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또 가장 단순한 몸짓과 가장 위대한 행동에서, 앎은 큰 삶을 드러내 보여주며, 앎과 함께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특질들을 모두 강하게 한다."[27]
앎 발견하기
"앎을 찾는 일에 헌신하라. 그러면 당신은 앎을 찾을 것이고, 앎을 기반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당신에게 힘을 줄 것이고, 삶의 다른 세 기둥을 다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26]
"앎길에서 당신의 진짜 동행자인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을 헌신할 때, 앎은 회복된다. 앎은 당신이 자신을 바칠 때 회복된다."[28]
앎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당신을 안내하고 보호하기 위해, 또 큰 삶으로 이끌고 세상에 참여하도록 이끌기 위해,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놓았다. 큰 삶은 이성의 영역 너머에 있으며, 깊은 수준에서 일어난다."[29]
"신은 당신을 안내하고 준비시키려고 앎을 주었지만, 앎은 사람들이 사는 표면 마음 아래에서 기능한다. 앎은 큰 지성이다. 앎은 세상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창조주에 응답한다."[30]
내적 안내 인용문
"따르는 것은 결합하는 것이다. 결합하는 것은 재결합하는 것이다."[31]
"앎은 당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모든 것이다. 앎은 당신을 바른 궤도에 유지시키기 위해 여기 있다."[32]
앎과 앎의 필요성
"우주에서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앎과 앎의 필요성만 있다."[33]
앎의 자유
"앎과 함께 있으면, 당신은 세상에서 자유롭다. 합류하는 것도 자유롭고, 떠나는 것도 자유롭다. 계약을 맺는 것도 자유롭고, 계약을 바꾸거나 매듭짓는 것도 자유롭다. 자신을 내맡기는 것도 자유롭고, 빠져나오는 것도 자유롭다. 앎 안에서 당신은 자유롭다."[34]
"앎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마음에서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마음에 더 객관적이 될 것이다."[2]
앎의 실재
"아는 것과 원하는 것은 다른 경우가 많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나서 종종 혼란을 느끼거나 좌절감을 맛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신이 체험을 통해 이것을 알고 나서야 앎이 상상으로 꾸며내거나 단순히 소망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아는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앎의 실재가 당신에게 입증된다. 그래서 이때 당신은 앎이 당신의 소망에서 나오거나 불안감 때문에 꾸며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재하고 지성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 지성은 당신의 충동이나 두려움, 소망, 그 밖의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28]
앎에 대한 필요성
"앎으로 가는 길이 있다. 당신은 지금 시간을 아껴야 하니, 앎으로 가는 그 길이 시간을 절약하게 해줄 것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은 속도를 내어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한없이 탐구만 하는 호사를 누릴 여가가 없다. 세상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 세상은 곧 큰 공동체에 진입할 것이다. 지금은 마음이나 감정 문제를 가지고 한가하게 시간 보내거나 이러저러한 치료법을 찾아 돌아다닐 여가가 없다. 그 대신 당신에게는 앎길이 있다. 세상에는 당신이 필요하고, 지금은 준비해야 할 때다. 지금은 한곳에 집중하고 결단해야 한다. 여기에서 도망갈 길이 없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큰 공동체 방문자들의 영향이 정신환경에 점점 더 강하게 미칠 것인데, 이때 앎길에서 성장한 사람들만이 능력을 발휘하여 정신환경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35]
"만약 당신이 지금 혼자라면, 지금은 앎과의 연결을 구축할 소중한 시간이다. 앎은 가장 깊고 중요한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확립되지 않으면, 이 관계가 온전히 확립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사람과 당신의 관계는 명확성과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으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당신 삶은 당신에게 진정한 통로를 결코 만들어주지 못할 사람들과 관계들, 활동들과 책무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36]
앎의 힘
"앎이 우주에서 가장 큰 힘이다."[37]
"앎은 확실하게 보고, 알고, 행동하는 힘이다. 앎은 또한 정신환경에서 설득과 기만과 영향에 저항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러한 힘을 가진 개인이나 국가는 개입에 저항할 힘이 있으며, 자신의 자유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국가의 의도와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앎은 지성의 궁극적인 형태이며, 앎의 인도를 받는 보는 자들은 그렇지 못한 보는 자들보다 더 강력하다. 여기서 당신은 미래나 미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다양한 수준의 정확성으로 그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도, 다른 이들의 의도와 능력을 분별할 수 있고, 당신이 사실은 정말 강하면서도 약한 척할 수 있으며, 당신이 사실은 질문에서 예리할 수 있으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은 대단한 군사력이나 기반시설 없이도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잘 방어할 수 있고, 타국의 의도가 미심쩍거나 불확실하더라도 타국과의 관계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성을 가지고 타국과의 외교에 참여할 수 있다. 만약 인류가 지구 국가들 사이 더 큰 통합을 이루고, 지혜롭고 지속적인 지구 사용법을 구축하기 위한, 힘과 헌신을 얻으려 한다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힘과 이 앎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탐욕과 욕망이 극복될 것이고, 경쟁과 충돌과 전쟁이 극복될 것이며, 불만과 증오와 불평등이 극복될 것이다."[37]
앎에 묻는 방법
"당신이 앎에 묻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답을 알고 싶지 않거나, 아는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서 거래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직 진심으로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정직하게 물으면 정직한 답을 얻을 것이고, 부정직하게 물으면 원하는 답을 얻을 것이다."[14]
"현실적인 문제들을 매우 근본적인 방식, 즉 “예, 아니요”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예, 아니요”이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38]
"만약 '예'가 아니라면, 그것은 '아니요'이다. ‘어쩌면’이란 없다. 그런 것으로 자신을 감질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모든 증거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이란 없다."[36]
각주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144 계단 나는 오늘 나 자신을 존중할 것이다.
- ↑ 2.0 2.1 2.2 큰 공동체 영성, 제 13 장 :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 ↑ 큰 공동체 영성, 제 15 장 : 누가 인류를 돕는가?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2 계단 앎은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181 계단 나는 오늘 앎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 ↑ 6.0 6.1 6.2 앎의 힘, 제 12 장 : 현존을 따르기
- ↑ 신이 다시 말했다, 제 8 장 : 축복
- ↑ 하늘의 비밀, 비밀 34
- ↑ 다른 계시들, 앎으로 가는 계단 밟기
- ↑ 큰 공동체 영성, 제 9 장 : 신은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 ↑ 앎으로 가는 계단 계속 과정, 제 1 계단 앎은 나와 함께 있는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 ↑ 하늘의 비밀, 비밀 262
- ↑ 큰 공동체 영성, 제7장 : 삶에서 지혜는 어떻게 얻는가?
- ↑ 14.0 14.1 14.2 앎길을 따르는 삶, 제 5 장 : 일의 기둥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346 계단 : 나는 일하기 위해 세상에 있다.
- ↑ 16.0 16.1 16.2 앎의 힘, 제2장 : 앎의 힘
- ↑ 신의 새 메시지 범세계 공동체, 제4장 : 새 메시지 학생되기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344 계단 : 내 앎은 내가 세상에 주는 선물이다.
- ↑ 큰 공동체 지혜 1, 제1장 : 큰 종교
- ↑ 큰 공동체 지혜 1, 제25장 :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205 계단 : 나는 오늘 세상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 ↑ 새로운 세상, 제 7 장 : [지구의 불안정 직면하기
- ↑ 계시의 시대, 계시의 음성
- ↑ 새 메신저, 제 1 장 : 하늘의 뜻
- ↑ 25.0 25.1 앎길을 따르는 삶, 제 1 장 : 신흥행성에서의 삶
- ↑ 26.0 26.1 26.2 앎길을 따르는 삶, 제 3 장 : 관계의 기둥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234 계단 앎은 모든 방면에서 인류를 돕는다.
- ↑ 28.0 28.1 앎길을 따르는 삶, 제 4 장 : 건강의 기둥
- ↑ 신이 다시 말했다, 제 3 장 : 결합
- ↑ 새로운 세상, 제 12 장 : 미래의 충격
- ↑ 하늘의 비밀, 비밀 4
- ↑ 마샬 비안 서머즈 (2012년 3월 10일)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207 계단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나는 용서한다.
- ↑ 앎으로 가는 계단, 제 167 계단 앎과 함께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자유롭다.
- ↑ 앎길을 따르는 삶, 제 6 장 : 영적 성장의 기둥
- ↑ 36.0 36.1 사랑과 관계, 관계에서의 분별력
- ↑ 37.0 37.1 인류의 동행자 제 3 권, 상황보고 7 : 질문과 답변
- ↑ 하늘의 비밀, 비밀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