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통의 종식
"당신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고, 당신이 세상에 주기로 된 큰 것을 받을 것이다."[1]
모든 고통을 포기하려면
"여기에 드는 시간만큼 고통이 동반된다. 신의 뜻은 당신의 고통을 덜어내어 당신이 완전히 없앨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신이 앎을 적용하는 법을 경험으로 배울 가장 마땅한 수단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당신의 관계는 배움의 장이고, 여기서 당신은 배울 것보다 버릴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은 마음의 구속과 추측, 마음의 억압적 요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 마음의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앎에 인도받는다면, 마음은 그렇게 할 것이다."[2]
"모든 고통을 포기하는 데 준비된 매우 드문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교육과정이 있지만 우리는 그 부분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육과정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과 관련이 없다. 모든 고통을 포기하는 데 준비된 이들이 선택한 길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방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 느린 방법은 당장은 더 쉽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어렵다."[3]
"그러므로 당신이 맨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며, 이 말은 당신이 판단 없이 고통에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고통에 현존한다면, 고통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고통에 반응하거나 고통을 바꾸려고 한다면, 고통은 언제든지 당신을 압도할 수 있다. 고통과 싸우는 사람들은 고통에 반응하므로 노예가 될 것이다. 고통은 습관이고 중독이므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고통은 사람들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다."[3]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해
"실망에 맞서 자신을 무장하는 것은 쇠사슬에 자신을 묶는 것과 같다. 그러면 당신이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어려움도 더 크다. 이 말은 더 많은 고통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고통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앎의 회복을 가르친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대담하고 모험적인 일이다. 당신의 상상은 큰 산을 오르는 것을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만든다. 앎의 회복에는 당신의 참 자아와 더 철저하게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며, 당신이 찾을 수 없는 당신의 모든 중요한 능력이 필요하다. 당신은 앎의 회복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조차 당신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한심한 사람이 되면 당신은 앎의 회복이 당신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당신 내면에는 자신의 시간을 이처럼 투자할 만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소중한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4]
"당신은 기원이 없다. 그래서 혼은 죽을 수 없다. 하지만 혼이 지옥 같은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혼의 고통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혼은 분리의 현실에서 죄수이다. 이 분리는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은 이 삶을 훨씬 지나서 있다. 당신은 심지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필요성이나, 육체를 가질 필요성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다른 능력으로 이 끝을 위해 일할 것이다."[5]